글이 나를 세운다.
고교생을 가르쳐 대학 문학특기생으로 합격시키기 위해서는 학생의 글쓰기 자질부터 살펴야 했고,
그 학생이 운문 쪽에 자질이 있는가, 산문 쪽에 자질이 있는가를 먼저 살펴야 했다. 개인의 능력에 있어
시와 소설을 동시에 잘 쓰는 이는 드물다고 보면 된다.
시의 창작에서는 운율을 중요시하면서 함축적인 묘사를 하는 능력이 필요하지만, 산문인 소설이나 에세이는 긴 글의 형식을 띠면서 글(이야기)의 구성이 따라야 하는 요소가 들어간다. 그래서 글의 맛이 달라지는 것이다.
페이스북을 하다가 어느 부모님이 문의를 보내왔다.
딸이 내신성적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곧이 문예창작과를 가고 싶어한다는 말이었다. 지방의 소도시 학교를 다니는데, 서울처럼 글쓰기를 가르치는 곳도 없고 해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글에 대한 고집이 강한 학생이었다. 그래서 그 학생의 글쓰기 능력을 알고 싶어서 학생이 쓴 글이라던가 수상한 실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때가 벌써 3학년 2학기의 후반기여서 봄부터 시작되는 각 대학 백일장이나 1,2수시모집 실기시험을 치렀을 때이므로 실기시험에 지원해서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 물어보았던 것이다.
지방의 학교라 따로 작가나 개인에게서 문학수업을 받은 적은 없었고, 한국종합예술학교의 여대생에게서 개인 지도를 받았는데, 지금까지 대학에서 치르는 백일장에는 여러번 참가를 했지만 수상한 경력은 없었다. 대학 수시모집에 지원해서 실기시험을 봤지만 낙방을 했다는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 수시모집은 다 끝난 시점이어서 앞으로 남은 정시모집만 남았을 텐데 아직까지도 변변한 실적도 없다는 것이 정시에서도 낙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불과 두 달이었다.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 때가 11월 중순이었으므로 1월 초에 치르게 되는 각 대학 정시모집에 합격하려면 남은 시간은 고작 두 달이 남아 있었다.
갑자기 해봐야겠다는 오기같은 것이 생겼다.
그래서 학생이 지도를 받는 여대생에 대해서 물었고, 그 여대생은 한예종의 영화과 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학생이 그동안 습작한 글 중에 가장 잘 썼다고 생각되는 글을 한 편 보여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한 편의 글을 보내왔는데, 그 글을 보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이 글은 산문으로 쓴 글인데, 단편소설의 형식으로 쓰긴 했지만 시나리오같이 묘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학생을 맡겠다고 하고서 그날부터 학생과 카톡으로 연결이 되었다.
정시 입시까지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우선 먼저 학생이 쓴 글에 대해 평가를 하면서 이렇게 쓰면 대학에서 뽑겠느냐고, 이런 글은 소설도 아니고 시나리오도 아니다, 지금까지 이런 글만 써왔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이렇게 가르친 그 여대생이
영화 전공이면서 지금까지 이렇게 가르치다가 이제 남은 정시시험마저 합격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그 학생에게 나무랐다. 여학생이 글에 대한 고집이 센만큼 나의 야단을 듣고서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카톡으로 대화를 하는 동안에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른다. 나중에는 전화로 돌려서 내가 한 말에 대답을 해보라고 다그쳤다. 그래도 묵묵부답이었다.
"너. 이제 정시시험이 딱 두 달 남았어. 이렇게 해서 어떻게 서울권 대학에 붙을래?"
"그 여대생이 시키는대로 그대로 쓸 거야? 그러면 넌 떨어져!"
호되게 야단을 쳤는데도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엄마를 바꿔달라고 해서 엄마와통화를 나눴다.
"당장 한예종 학생의 과외를 끊으십시요. 안 그러면 이대로 나가면 반드시 떨어집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매일 연습을 하도록 할 테니까 학생이 지도를 따르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학생을 맡지 못합니다. 저도 두 달만에 합격시킨다는 보장을 해드릴 수 없어요"
그렇게 과외가 시작되었다.
인문계 학생이라서 하교해서 일반 공부를 하다가 밤 10시부터 카톡으로 지도를 하기 시작했다. 카톡에서 만나면 만남의 인사부터 하고서 곧바로 제목을 주고서 두 시간 안에 글을 써서 카톡으로 보내라고 했다. 중간에 글을 쓰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글을 보내서 수정을 받으라고 하고서 기다렸다. 중간중간 글이 막힌다면서 카톡이 왔다. 그러면 앞으로 나아갈 글의 방향을 알려주기도 하고, 지금 쓴 문장이 뒤의 글과 앞으로 나갈 글의 연결이 되도록 수정한 글을 보내고선 또 기다렸다. 매일 그러한 연습의 연속이었다.
10시면 카톡을 켜서 오늘 하루에 쓸 글의 제목을 보내주고, 학생이 중간중간에 보내오는 글을 수정해 보내고서 기다리면서 새벽 2시까지 이어나갔다. 아침에 학교에 가려면 2시 이상은 시간을 넘길 수가 없었다. 그 학새은 고집이 세었지만(그동안에 배운 대로의 글의 습관) 점점 고집을 꺾고서 내가 준 시제에 맞춰 글을 써서 보내왔다.
결과는 과연 어땠을까.
정시시험을 치르기 위해 부모님과 같이 서울에 올라온 학생을 그때 처음 만나보게 되었다. 서울예대와 숭실대, 추계예대 문창과에 차례로 합격을 하고서 마지막 남은 단국대 실기시험을 남겨놓고 있었다. 학새은 서울예대에 가고 싶어했다. 나도 학생의 뜻에 동의를 했다. 그때 서울예대에서 나온 시제가 '유교 위에서 내려다본 찻길'이었다. 그 제목에 맞게 시나 소설을 써내는 시험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단국대에 가서 시험을 본 시간은 2시간이었다. 제목을 받고서 그 시간 안에 글을 써서 내는 일이었다. 실기시험을 치르고 나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학생에게 서울예대에 간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내려가라고 하고선 있는데, 시험 발표일에 그 학생에게서 카톡이 날라왔다.
"선생님. 저 합격했어요. 등록금 면제에요"
"등록금 면제라고? 등록금 고지서를 보내봐라"
나는 깜짝 놀랐지만, 등록금 고지서를 본 순간, 수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학생이 수석이 될 줄 알았더라면 미리 부모님에게 수석을 했을 때에는 420만원의 옵션을 줄 거냐고 말이라도 해볼 것을 미리 하지 못한 것이다. 축하한다고 말을 건넸다. 고맙습니다 라는 인삿말을 들었을 때에 깊은 안도감이 찾아왔다. 학생은 결국 가고 싶어했던 서울예대보다 장학생이 되는 단국대를 선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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